난 유명인이 될꺼야!
어린 시절, 나는 분노의 화신이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했고,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선천적인 성격 탓인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안의 분노는 언제나 용솟물처럼 솟아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찰리 채플린을 동경했다. 그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나를 웃게 만들었고, 동시에 나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했다. 유명한 개그맨이 되어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다. 그 꿈을 위해 나는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화를 참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을 억누르는 듯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그는 슬픔과 고독 속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냈다. 나 역시 그처럼 웃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끊임없는 연습 끝에 나는 어느 정도 분노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분노를 감추다 보니 이번에는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했다.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가벼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바보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분노로 가득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의 삶이 훨씬 편안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구와도 싸울 필요가 없었고,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분노를 억누르느라 진정한 나의 감정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속에는 슬픔과 고독이 공존했다. 그의 웃음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깊은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과연 찰리 채플린처럼 진정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찰리 채플린의 그림자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웃음, 두 개의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지금이 좋다.